아이는 카메라를 선물받고 모형기차 레일로 달려간다. 기차가 전속력으로 달려와 선로를 이탈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고 또 찍으며 돌려본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파벨만스」의 장면이다.
영화 속 기차의 존재감의 시작은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L'Arrivé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에서 시작된다. 50초 남짓한 흑백 기록이지만, 달려오는 기차 한 대가 스크린을 강타하면서 '움직이는 이미지'의 파급력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렸다. 영화 매체가 보급되는 데 영향을 끼친 사건이다.
사라져가는 역에서의 향수, 끝나지 않는 이야기
어린 시절 기차는 용처럼 거대한 실물 이전 각종 애니메이션에 등장하여 각 세대를 사로잡아 왔다. 고전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부터 「토마스와 친구들」에 이르기 까지 어린시절 기차는 친구와 모험이라는 연결고리를 머리속에 만들어준다.
한국 드라마 속 남원 구 서도역(「미스터 션샤인」), 영동 심천역(「동백꽃 필 무렵」) 같은 장소들은 역사속에 묵묵히 한 자리를 지키는 작은 역들이 어떻게 멜로드라마와 시대극의 배경이 되는지 잘 보여준다. 이 간이역들은 언제나 떠날 수 있는 군중의 흐름이 아닌, 떠나지 못한 사람들과 오래된 비밀, 뒤늦게 찾아온 사랑을 조용히 품고 있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도시를 잇는 선로 — 기차 속에서 일어나는 우연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다즐링 주식회사」에는 전형적인 로드무비로 삼형제가 함께 떠나는 여행을 담는다. 여행을 시작할 때의 목적과 다른 종류의 경험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는 공통의 모험담이 그들 세 명 관계의 변화를 가져온다.
기차 여행속에 펼쳐지는 가능성의 서사가 모두 낭만적인 것은 아니다. 연상호 감독의 「서울역」과 「부산행」은 같은 세계관 속에서 서울역과 KTX를 배경으로, 근대화의 상징이던 철도가 재난과 공포의 통로로 전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부산행」에서 KTX 객실은 생존을 둘러싼 계급 갈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밀폐된 사회 축소판이 되고, 종착역 부산은 더 이상 '도착'이 아닌 또 다른 위협의 예고편이 된다. 영화는 우리가 평소에 어슴푸레하게 가지고 있던 일상을 떠난 '여유의 공간'이라는 기차 여행의 환상을 가볍게 뒤틀어 좀비가 활개치는 생과 사의 장소로 바꾼다. 장항준 감독의 「라이터를 켜라」처럼 열차를 코미디와 범죄극의 무대로 사용하는 영화에서는, 같은 서울–부산 사이의 선로가 우연과 해프닝이 뒤엉킨 로드무비적 공간으로 변한다.
머무름과 출발이 겹치는 공간
기차 여행이라는 계획하에 많은 우연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많은 승객이 한 시각에 하나의 선로 위에 이동하는 공간 속에 우연히 함께하는 풍경과 사람들이 있다. 이 장소에서 만남-사랑-이별이 동시에 겹친다.
사랑 영화와 드라마(「비포 선라이즈」, 「연애의 발견」 등)에서는 같은 플랫폼이 우연한 스침, 약속된 재회,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 이별의 현장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머무름과 출발이 겹치는 공간인 역, 다가오는 열차 시간은 주인공들이 관계에 대한 결단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기차역은 재회의 공간으로 가족과 친구를 마중 나가는 설렘의 장소이기도 하다. 영화 「화차」의 후반부 재회 장면에 등장하는 서울역의 에스컬레이터 장면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이다. 실종과 오랜 추적 끝에 재회가 주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지나치는 '역'이라는 장소의 무게감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로서의 역
열차를 타기 위해서 벽을 향해 돌진해야 한다면? 아마도 현존하는 특별한 승강장 중 하나는 「해리 포터」의 9와 4분의 3 승강장일 것이다. 소설 속 등장하는 장소가 현실 세계의 킹스 크로스 역 한복판에 숨겨진, 마법 세계로 진입하는 문턱이다. 해리가 마법학교에 가기 위해 거쳐가야 했던 이 승강장은 기차역이 단순한 이동의 출발점이 아니라 "한 번의 결단으로 삶의 위상이 바뀌는 통과의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차 여행이 유독 영화적인 이유는, 어쩌면 기차가 인간이 만든 이동 수단 중 가장 '시간'을 닮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행기는 공간을 압축하고, 자동차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지만, 기차는 정해진 선로 위를 정해진 순서로 달린다. 멈출 수 없고, 되돌아갈 수 없으며, 중간에 내리지 않는 한 목적지까지 데려다 놓는다. 창밖의 풍경은 흘러가고, 승객은 그 흐름 안에서 아무것도 통제하지 않는다. 그 무력함이 오히려 사람을 내면으로 향하게 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기차 안에서 오래 묵혀둔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꺼내 들고,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다. 기차는 '가는 중'이라는 유예의 시간을 제공한다. 일상도 아직 아니고, 목적지도 아직 아닌, 그 사이 어딘가 — 그곳에서 사람들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을 하고, 평소라면 내리지 않았을 결단이 일상에 단단히 묶여있지 않은 일과표 속에서 이루어진다.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가 스크린을 향해 돌진한 그 순간부터, 영화는 계속해서 그 '사이의 시간'을 포착하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강릉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여행이지만 기차 여행 중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은 그간 내가 얼마나 많은 기차에 관한 영화를 보아왔는지 떠올리게 했다. 「부산행」과 같은 내던져진 상황에서의 영웅 서사부터 친구들과 함께하는 토마스 기차의 여행, 평생을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사랑 영화 「비포 선셋」, 마법사가 되기 위한 첫 번째 도약의 순간까지 — 열차 여행을 계획 중이거나 평소에 좋아하신다면 영화와 드라마 속 기차를 먼저 만나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당신은 불현듯 기차표를 사게 될 것이다.
추천 여행지
- 남원 구 서도역 |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 영동 심천역 |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 서울역 | 영화 「부산행」, 「라이터를 켜라」, 「화차」
- London King's Cross Station, Platform 9¾ |
영화 · 드라마 속 기차
- 「오리엔트 특급 살인」 | 한정된 객실 안에 각기 다른 국적과 계급, 비밀을 지닌 인물들의 추리극
- 「설국열차」 | 양갱과 스테이크
- 「철도원」 | 눈 덮인 지방 간이역을 지키는 노장의 인생
-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 무한히 계속되는 꿈의 공간
- 「다즐링 주식회사」 | 가족은 서로 많이 알고 또, 많이 모른다
- 「은하철도 999」 | 철이와 메텔은 여행 중
- 「비포 선셋」 | 그 시절에는 낯선이와 기차에서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 「연애의 발견」 | 미워하는 동안은 헤어진 게 아니다.
- 「토마스와 친구들」 | 한번 친구는 나이 들어서도 친구, 이때부터 기차 수집이 시작된다.
- 「해리 포터」 시리즈 |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공중부양 마법)
- 「파벨만스」| 내가 처음 나의 카메라를 갖게된 순간은?
Summary
- 기차는 영화 역사상 가장 오래된 피사체 중 하나로,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에서부터 스크린 위를 달리며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왔다.
- 작은 간이역부터 대형 터미널까지, 기차역은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향수, 로맨스, 공포, 계급 갈등 등 다양한 감정과 서사가 교차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변신한다.
- 기차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영화와 드라마 속 기차를 먼저 만나보길 권한다 — 어느 날 밤 불현듯 기차표를 사고 싶어질지도 모른다.